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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보듬는 가을 - 희망 움트는 겨울
just2bang 2015-07-23




가을 반딧불이
아픔을 안고사는 사람들 옥신각신 서로 다가서기

겨울 선인장
性 정체성 겪는 고교생 4명 어른이 돼가는 과정 담아내

‘정의신 vs. 정의신’이다. 지난 4월,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에서 선보인 실험적인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연출하며 창작의 세계를 한층 넓힌 재일교포 극작·연출가 정의신. 한·일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국내 연극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후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시켰고, 흥행과 작품성 모두 보증하는 스타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정의신의 희곡 두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올려졌다. 소외된 자들이 서로 보듬으며 식구가 되는 모습을 그린 ‘가을 반딧불이’(연출 김제훈)와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중학교 동창 넷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겨울 선인장’(연출 김지원)이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절제된 유머, 따스한 메시지. ‘정의신표 연극’으로 위로받는 여름이다.

‘가을 반딧불이’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붕괴된 ‘지금’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삼촌과 함께 살아가는 청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을 찾아온 불청객들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가정 구성원이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이 함께 얽히며 갈등하고, 접점을 찾는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다. 그러다 눈빛을 들여다 보고, 속내를 읽고, 서로를 이해한다.

스물 아홉 청년 다모쓰가 삼촌 슈헤이, 결혼 사기를 당한 마스미, 또 실직과 이혼을 겪고 막무가내 성격이 돼버린 40세 남성 사토시와 옥신각신하며 거리를 좁혀 가는 모습은 일상적이면서도 비장하다. “이 집에서 내가 나가야 할 사람”이라고 ‘과장된’ 자학을 부리면서도, 사실은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어서다. 가족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지)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우는 가장 강력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2013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 연출가상, 2014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조연호, 김태훈, 최선일, 구옥분 등 출연.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8월 30일까지. 02-765-8880

‘겨울 선인장’ 역시 소외된 자들을 다룬다. 이번에는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고교생 4명의 성장기다. 정의신은 늘 ‘경계에 선 자’들을 다뤄왔는데, 가을 반딧불이가 변두리 보트선착장을 배경으로 택했다면, 겨울 선인장은 어느 지방 야구장의 라커룸으로 이동한다. 너른 운동장이 아니라….

중견수 후지오, 좌익수 하나짱, 투수 가즈야, 우익수 베양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동료 류지를 기리며 1년에 한 번씩 야구부 모임을 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게이다. 남모를 ‘같은’ 고민을 안고 친해진 이들은 10년 후에도 변함없이 모여서, 과거 그리고 현재를 이야기한다. 고교 시절의 추억, 남자와 남자의 연애, 가족과의 갈등, 다른 게이와의 다툼 등. “우리, 그래도 잘 살고 있어”라고 서로를 위로하지만, 미래는 막연하다. 후지오와 가즈야는 연인 사이지만 함께 살 수 없고, 하나짱은 여장을 하고 일하지만, 늘 사랑이 고프다. 베양은 대인공포증과 콤플렉스로 늘 외롭다.

이들이 주어진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마흔이 가까운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또다시 라커룸에서다. 류지와 함께 부른 교가 테이프를 끊은 후 “용기와 희망과, 얼마 안 되는 돈과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말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린다. 정재훈, 서한열, 윤혁진, 김한 등 출연. 압구정 윤당아트홀 1관, 8월 16일까지. 02-765-8880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